Tuesday 27 October 2009

2005 수원 신진작가 발굴전

임순남은 이번 전시에서 외관상 구별돼 보이는 두 작업을 함께 전시했다. 영상설치작업인 <교정연습>과, 평면 페인팅 작업인 <기억된, 조각난 부분들에서 낯설다> 등이다. 이 가운데 <교정연습>에서는 천성적으로 왼손잡이인 작가가 자기 외부로부터의 강요와 요구에 직면하여, 오른손잡이가 되기 위해 겪는 시행착오와 오류의 과정을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작가는 개인이 갖고 있는 차이를 인정하고 포용해주지 못하는 사회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한다. 왼손잡이가 사회적으로 결격사유나 장애로 받아들여지고 있음을 주지시킨다. 작가의 작업에서의 왼손잡이는 그러니까 단순한 작가의 개인적 경험을 넘어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장애로서의 일반적인 문제의식에 맞닿아 있으며,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에 대한 인식에 맞닿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인식구조 속에서의 사회는 개인을 정상인과 비정상인으로 구별하고, 비정상인으로 하여금 정상인의 삶의 방식에 맞추도록 강요한다. 말하자면 학교나 군대에서나 볼 법한 획일화된 개인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는 그 자체 사회적인 삶 속에서 또 다른 형식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개인은 획일화된 이러한 삶과 더불어 개체성을 상실한 주체, 익명적 주체, 사회적 주체로서 거듭난다. 이러한 사회적 주체가 교육의 산물임은 물론이며, 이는 그 자체 여전히 자기 정체성을 간직하고 있는 전인적 주체와는 비교되는 것이다. 작가의 작업은 이처럼 자기 속에 차이를 간직하고 있는 전인적 주체를 회복하는 일이 모든 주체에게 과제로서 주어진 것임을 주지시킨다.

평면 페인팅 작업인 <기억된, 조각난 부분들에서 낯설다>에서 작가는 기억의 속성을 재현하는 한편, 그 과정에서 나타난 타자와의 관계에 주목한다. 이를 위해서 작가는 그림 속의 모든 형상들을 평면의 실루엣으로 환원시킨다. 이렇게 드러난 실루엣 형상은 화면 전체를 뒤덮은 하얀 피막에 의해 가려지고, 그 위에 또 다른 실루엣 형상이 부가된다. 그러니까 여러 이질적이고 다양한 실루엣 형상들이 마치 단층처럼 중첩돼 있는 것이다. 여기서 실루엣으로 환원된 형상 자체는 기억의 속성을 상기시킨다. 즉 기억은 언제나 사실의 전체 대신에 부분만을 재생하며, 나아가 구체적 사실을 추상적 사실로 변질시키기조차 한다. 마치 말 전달하기 놀이에서의 처음의 말과 나중의 말이 서로 틀리는 것처럼 기억의 재생능력은 불완전하기만 하다. 이 같은 사실의 왜곡은 물론 기억 자체의 한계가 그 원인이지만, 그 과정에 주체의 이해관계가 개입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자신이 처한 저마다의 입장에 따라 사실을 곡해하고, 심지어는 의도적으로 잘못 읽기조차 하는 것이다(현대미학에서는 오독 誤讀을 적극적인 해석 행위로 간주하기도 한다).
이는 그대로 타자와의 관계에도 적용된다. 즉 사람들 간의 관계는 마치 기억이 그런 것처럼 불완전하고 부분적이며 심지어는 자의적이기조차 하다. 그 관계는 조각난 신체처럼 부분적이고, 그 실체를 알 수 없는 형상처럼 애매하기만 하다. 작가는 말하자면 불완전한 기억과 자의적인 타자와의 관계로부터 인간 실존의 불합리한 조건을 본 것이다. 이때의 부조리한 인식은 왼손잡이로 나타난 작가의 자의식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고충환(Kho, Chung-Hwan 미술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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